박채린은 창작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며,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먼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마음을 크게 흔드는 사건들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사건들, 그리고 그 화려한 장면들에 밀려 잊혀 가는 작은 삶들을 발견하는 순간 이 그렇다. 박채린은 타인의 삶에 공명할 때, 마음이 울리는 형상을 그림 속에 담는다. 쉽게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존재들, 견고해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 느슨해지는 정의의 개념, 실패하는 유토피아, 기울어진 평등과 중립이라는 모순을 들여다본다. 일상과 사회 현상에서 비롯된 복잡한 감정들을 작업을 통해 정리해 나가고 있다. 유약한 것들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유약함을 극복할 힘을 내면 어딘가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의 관계를 연구해 왔다. 작가로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또 자신과 세계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고민하며 적합한 조형 언어를 찾기 위해 실험을 거듭해 왔다. 한지를 심장 박동수의 형태로 그을린 뒤, 여러 겹을 배접하여 형태를 드러내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참고한 사건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작업하려 하지만, 그것은 타자화를 위함이 아니라 고통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거리감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표현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하고 있었다. 자극적인 사건에 동요하며 시작한 작업이 진행되면서 점차 정돈되고 차분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소극적이라기보다는 혼란에 대한 무거운 심경이 차분하게 드러난 것이 아닐까?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설명을 절제하고, 감각만을 짙게 드러내야 할 때도 있다.
박채린은 소극적인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을 직관적인 방식으로 풀어보기도 했다. 화판이나 캔버스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창틀이나 침대 프레임처럼 쓰임을 다한 사물을 모아 지지체 혹은 재료로 사용하게 되었다. 쓰임을 다한 재료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작업을 진행하며 피치 못하게 생기는 폐기물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되었지만, 수명을 다한 것들에게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기도 한다. 사회에서 거부되는 것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외로운 마음을 돌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걸음 물러서 관조하는 작업과는 대조적으로, 조금 더 직접적인 위치에서 자신을 표현한 작품도 있다. 파운드 오브젝트를 재활용해 만드는 작업에서는 사회가 주는 압박감과 여성이 느끼는 공포, 불안감 그리고 무의식에 자리 잡은 여러 감정의 잔상들이 꿈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지켜보고, 꿈속에서 두서없이 발생하는 이미지들을 그림 속에 기록하듯 담아내기도 했다.
다정함이 귀해진 세상이다. 박채린의 작업은 불의와 혼란에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실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평화와 평등을 추적 중인지도 모른다. 태국에서 보낸 두 달간의 경험을 담은 시리즈 속에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한때가 담담하게 담겨 있다.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라거나 , 여행지에서 직업이나 국적 같은 수식어를 내려놓고 순수하게 여행지에 대한 감상만을 나눈 기억들과,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수평해졌던 경험 을 그리기도 했다. 서로 다른 시간들이 여행지에서 교차하는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이를 다시 캔버스 위에서 재구성했다. 여행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작업 속에서 아름답게 드러나는 것을 알았을까? 박채린이 고민하는 창작자의 태도는 결국 사람들이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드러내는 진실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낼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아닐까. 크게 외치지 않고서도, 그림은 고요하게 누군가를 설득한다. 나는 내가 살고있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명하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유토피아를 찾게 되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다정함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일보다 영원히 겪을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지만, 결국 우리는 알고 있는 만큼만 세상을 인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보아야 하고, 분별할 수 있을 때까지 연구해야 한다. 그림이 할 수 있는 일은 화면을 통해 세상을 고요하게 만들어, 어디에나 있지만 쉽게 지나치는 작은 것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진득이 바라보며 파악해야 하고, 회화 속에 무엇을 담고 덜어낼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문소영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큐레이터)